서론
우리는 충만함을 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정보는 넘쳐나며, 삶의 조건은 나아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여도, 내면은 텅 비어 있고, 관계는 얕고, 목적은 희미합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고, 관계를 갈망하며, 물질을 쌓으려 애쓰지만, 결국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경이로운 신비입니다. 에베소서 4장 10절은 그분이 “내리셨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닌, 철저한 낮아지심의 행위였음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에 들어오셨다는, 이해하기 힘든 겸손의 본보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이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광에서 비천으로, 존귀에서 멸시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사람과 같이 되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낮아지심은 철저하고도 완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심의 발로가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필수적 희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스스로 연약해지시고,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굶주리셨고, 목말라하셨으며, 피곤함을 느끼셨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거부당했으며, 죄인으로 정죄당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토록 철저한 낮아지심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높음을 내려놓고 땅의 깊이까지 들어오셔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형벌을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하늘로 이끌기 위해 그분은 먼저 우리 자리에 내려오셔야 했습니다. 그분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로 표현하고, 때로는 조건을 달며 주고받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히 낮추고,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임하시는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바로 그런 사랑의 극치이며, 그 사랑이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위로와 능력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그분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단지 인류 전체를 위한 구속이 아니라, 바로 나 하나를 위한 개인적인 구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만나기 위해 낮아지셨고, 나를 일으키기 위해 무릎 꿇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우리가 있는 그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입니다.
이 낮아지심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고,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는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분의 마음을 품고 섬김과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땅에서 하늘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낮아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입으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며 우리를 대신해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낮아지심은 다시 높아지심으로 나아가는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무덤의 침묵을 지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다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순히 하늘로 사라진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이 하늘의 권세와 연결되었음을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그는 땅에서 돌아가셨지만,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셨고,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승천은 그의 낮아지심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응답이며, 예수께서 단순한 스승이나 순교자가 아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심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승천은 그리스도의 지위 회복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일도 포함합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대제사장으로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부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그는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더 깊고 풍성하게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한 자리로 옮겨가신 것입니다.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며, 그의 몸 된 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세상에 혼란과 악이 가득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 위에서 그리스도는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승천을 통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요동쳐도, 우리의 주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일하고 계시며, 그분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승천은 또한 약속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셨듯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승천은 떠남이 아닌 재림을 향한 준비이며, 교회가 기다려야 할 소망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완성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날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줍니다. 승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땅의 일에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더 큰 소망과 방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야 하며, 그분의 권세 아래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땅에서 하늘로 오르신 예수님은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광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주님입니다. 그분의 승천은 우리에게 세 가지 확신을 줍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고, 우리 삶에 지금도 간섭하고 계시며, 언젠가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삶의 빈 곳을 채우시는 그리스도의 능
우리 모두의 삶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빈자리가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허전함이 밀려오고, 바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음 한편은 공허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빈 곳을 인간관계로 채우려 하고, 어떤 이는 성취와 명예, 혹은 물질로 메우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이 깊은 갈증은 결국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셨다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이 빈자리를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입니다. 주님은 단지 우주를 충만하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마음, 감정, 기억, 그리고 연약함까지도 충만하게 채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충만은 우주적이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입니다. 그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면서, 내 마음 한편의 눈물 한 방울까지도 아시는 세밀한 위로자이십니다. 삶의 빈 곳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상처 입은 과거, 실패의 기억,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 방향을 잃은 공허함, 반복되는 죄책감, 의미 없는 일상.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곧 한계를 마주하고 삶의 허무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이 빈 곳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에 찾아오십니다. 그는 우리 안의 공허함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공간에 자신의 인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평화로, 위로로, 진리로, 능력으로,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던 그 자리, 억지로 눌러도 다시 올라오던 슬픔과 외로움의 공간을, 그분은 말씀과 은혜로 채우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구속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결핍을 대신 짊어지셨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비워지셨기에 우리는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분이 낮아지셨기에 우리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그분께 솔직히 나아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실제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채우기 위해 시작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 중만 함을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누립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것은 예배 중에도, 고요한 묵상 가운데서도, 일상의 고단한 순간에도, 눈물 흘리는 밤에도 우리와 함께하는 임대입니다.
삶의 빈 곳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감추기보다 주님께 열어 보여야 합니다. 그 공간을 스스로 채우려는 수고를 멈추고, 주님께서 채워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안식과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만물을 충만케 하실 뿐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삶을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 충만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략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우주를 창조하셨고,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며,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놀랍게도, 인간의 눈에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인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확장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전략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종교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머무는 장소이며, 동시에 그 충만함이 세상 가운데로 흘러가는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실제적 표현이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 세상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파편화되고 있으며, 외로움과 분열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향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다양한 지체들이 함께 모여 사랑으로 연합하며, 서로를 세우고 돌보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과 사랑은 단지 내부적인 만족이나 안정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확장되어 세상 가운데 충만함을 흘려보냅니다. 하나님의 전략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그러했고,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은혜와 정의, 회복과 소망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은사를 나누어 주셨고,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임대가 거하시는 곳입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처럼,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임재가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임합니다. 그리고 그 충만함은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여, 우리가 만나는 모든 공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지 모이는 곳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파송된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충만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말, 행동, 관계, 섬김, 나눔—all of these are ways in which Christ fills the world through us.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웃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살아갈 때, 바로 그 순간 교회를 통해 세상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조롱과 냉소 앞에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전략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은 세상 가운데 흘러갑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서로를 사랑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충만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략이며, 그분의 꿈입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구속의 이야기 속에, 오늘 나와 당신, 우리 교회가 함께 부름을 받아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결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으며, 다시 하늘로 오르셔서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승천은 단지 하늘로의 이동이 아니라, 모든 권세 위에 우뚝 서신 통치자의 자리로의 복귀였고, 동시에 성령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