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믿음의 증거는 순종입니다

by 즐거운 블로깅 2025. 4. 15.

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그 고백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삶으로 판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2장 3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우리를 통제하거나 억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지도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마음에 응답하는 행위이며, 신앙 고백이 삶의 행동으로 연결되는 자리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분의 계명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의 고백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킨다.”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서 드러나며, 순종은 그 사랑의 가장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또한, 계명을 지키는 삶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며, 우리를 죄와 파멸로부터 지켜주는 생명의 울타리입니다.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길입니다. 순종은 억지가 아닌,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흘러나오는 자발적인 반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뜻, 곧 계명을 따르는 것은 신앙인의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진정성과 깊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많은 사람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마치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구원을 얻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나 순종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결코 이전과 똑같이 살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단지 지식이나 감정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바로 그 삶의 변화가 ‘순종’이라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마치 건강한 나무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듯,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서 순종하게 됩니다. 억지로 가 아니라, 기쁨으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예수님도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자라면, 우리 안에서 계명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열매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 순종은 구원의 전제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을 부담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맺어 가는 아름다운 열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열매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을 때, 그 계명은 단지 율법서에 나열된 조항 몇 개를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과 성품이 담긴 삶의 방식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계명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가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심 어린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희생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중심입니다. 그분은 단지 “이것을 하라, 저것은 하지 말라”는 외적인 행동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 없고, 계산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따르고,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선택하는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삶이며, 그분을 진정으로 아는 자가 보여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율법과 은혜 사이, 그리스도인의 순종

많은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강조하며 철저한 행위와 규칙을 강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은혜를 말하며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율법의 멍에 아래 얽매인 삶도 아니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삶도 아닌 그 중간 지점, 곧 은혜 안에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제 율법의 형식과 외적 규칙에 매이지 않고,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거룩함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은혜는 율법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사랑 안에서 더 깊이 깨닫고 실천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율법주의적 순종이 아닙니다.

 

 

 

 

억지로, 두려움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에서 흘러나오는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이유는 더 이상 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분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율법 아래서는 순종이 구원의 조건이었지만, 은혜 아래서는 순종이 구원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명을 기쁨으로 지켜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답게, 사랑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율법과 은혜 사이,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그 경계를 넘어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순종입니다

결론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이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돌아보게 하는 깊은 거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분의 말씀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단순한 신앙의 미성숙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참된 관계는 언제나 순종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